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인물들 ① 라흐마니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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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1873~1943)

Сергей Васильевич Рахманинов, Sergei Vasilievich Rachmaninoff




1. 생애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지휘자. 1873년 4월 1일 러시아 벨리키노보고로드에서 태어났다. 4세 때 피아노를 배우고 9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했으며, 3년 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1891년에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완성하기도 했다. 1892년 오페라 “알레코 Aleko”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하고 1897년 교향곡 1번을 발표했지만 평단의 혹평을 받았다. 어떤 비평가는 그의 곡을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과 비교하기까지 했다. 이 충격으로 인해 3~4년 간 아무 곡도 작곡하지 못한 채 엄청난 슬럼프에 빠졌다.


1901년 니콜라이 달의 치료가 성공하면서 우울증을 극복하여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발표하고, 이 곡을 달 박사에게 헌정했다. 1905~1906년에는 모스크바 황실 극장 지휘자로 일했으며, 1909년에 피아니스트의 무덤이라 불리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발표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를 떠나 노르웨이로 향했다가 1918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이후 미국에서 살면서 적은 수의 작품만을 남긴 채 1943년 3월 28일,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에서 사망했다.



2. 작품세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에는 크게 종교(종소리)와 우울증(죽음), 그리고 러시아가 있다. 라흐마니노프 스스로가 어렸을 때 정교회의 예배나 니주니-노브고르드 성당에서 들었던 종소리에 영감을 받았다고 했었고, 그의 작품들 대부분에 교회의 종소리와 정교회의 엄숙함이 짙게 묻어나온다. 기악곡에 묻어나오는 종교적 색채 외에도 종교에 관련된 작품도 많이 작곡했다.

우울증은 앞에서 언급했던 교향곡 1번의 혹평으로 3년 간 슬럼프였던 것도 있지만, 지주였으나 방탕한 삶을 살아 가정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와 평소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 슬럼프 시기에 사촌과 결혼한 것에 대한 정교회의 비난 등 작곡 환경에서 심적으로 억누르는 요소가 많았다.


또한 조국이 소비에트 혁명에 휩싸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유럽으로, 결국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고 그는 죽을 때 까지 조국을 그리워했다. 조국을 떠난 후 했던 인터뷰나 평소의 의식주도 그렇지만 음악적으로도 ‘러시아인다웠다’고 한다. 그가 망명 후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4번과 그의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에서는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을 지울 수가 없다. 



3. 작품의 특징


그의 작품에는 198cm의 육중한 몸집, 거대한 팔, 13도를 넘는 넓고 두툼한 손이라는 작곡가 본인의 신체 조건이 반영되어 있다.  마르팡 증후군을 앓아 손가락이 길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일설에 따르면 엄지로 ‘도’를 짚은 상태에서 새끼손가락으로 다음 옥타브의 ‘라’를 짚을 만큼 길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손가락의 관절도 굉장히 유연해서 오른손 2, 3, 4, 5번 손가락으로 도-미-솔-도의 C코드를 짚은 뒤 엄지를 손바닥 아래로 밀어 넣어 1옥타브 위의 미를 짚을 수 있었다고도 한다. 악보는 10도 이상으로 손을 찢으며 건반을 4개 이상을 누르는 옥타브와 굳이 넣지 않아도 됐을 음표로 점철되어 있고, 이걸 모두 물 흐르듯이 표현해야 한다. 이러니 아무리 타고난 테크닉과 센스가 있어도 신체적 조건이 받혀주질 않으면 친다 해도 한계가 명확하게 들린다.



4. 라흐마니노프의 가족


1) 바실리 아르카디예비치 라흐마니노프 Vasily Arkadyevich Rachmaninov (1841~1916)

라흐마니노프의 아버지. 장교이자 피아니스트였다. 가출과 음주 등으로 가세를 기울게 했다.


2) 류보프 페트노브나 부타코바 Lyubov Petrovna Rachmaninov (1853~1929)

라흐마니노프의 어머니. 장교의 딸이었다.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를 시작하게 도와준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4살의 라흐마니노프가 악보 없이 정확하게 피아노 한 소절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감명 받아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게 했다고 한다.


3) 알카디 알렉산드로비치 라흐마니노프 Arkady Alexandrovich Rachmaninov (1808~1880)

라흐마니노프의 할아버지.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안나 오르나츠카야[각주:1]에게 사사받도록 했다.


4) 옐레나 바실리예브나 라흐마니노바 Elena Vasilyevna Rachmaninova (1865~1885)

라흐마니노프의 누나. 18살의 나이에 악성 빈혈로 사망했다. 라흐마니노프에게 음악적 영향을 가장 크게 끼친 사람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소개한 인물이기도 했다. 극 중에서 라흐마니노프가 무의식중에 계속해서 피하고 있는 기억 속의 주인공이다. 


5) 알렉산드르 일리치 실로티 Alexander Ilyich Siloti (1863~1945)

라흐마니노프의 사촌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 그리고 작곡가였다.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실력을 매우 칭찬했으며,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할 것을 추천한 사람도 실로티였다. 라흐마니노프가 즈베레프와 결별한 1883년부터 그를 가르쳤다. 지휘자로서 실로티는 1901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세계 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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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흐마니노프의 첫 스승.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으며, 라흐마니노프의 어머니의 친구이기도 했다. 1880년부터 1882년까지 라흐마니노프 가족과 함께 살며 2~3년 간 라흐마니노프를 가르쳤다. 1896년에 라흐마니노프는 그녀에게 “봄의 홍수”, Song No.32를 헌정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