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05 배니싱 - 관객과의 대화
자료1 17. 12.

2017. 12. 05 관객과의 대화

with 에녹 배우, 주민진 배우, 이용규 배우, 성종완 연출

한재은 작가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여 성종완 연출이 준비된 답변을 대신 읽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께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성종완 안녕하세요, 배니싱 연출 성종완입니다.

주민진 안녕하세요,  배니싱에서 케이 역할을 맡은 주민진입니다.

에녹 김의신 역할의 에녹입니다.

이용규 안녕하세요, 배니싱에서 윤명렬, 아키라 키요시 역을 맡고 있는 이용규입니다.

<사전 질문>

뮤지컬 배니싱은 작년 3월 트라이아웃으로 관객 분들을 먼저 만났었는데요, 그때와는 달라진 설정별로 트라이아웃과 본 공연에 대한 비교 질문이 굉장히 많아서 이 부분 먼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선 트라이아웃 때와 스토리가 대거 수정되었는데요, 그 중 여자 기자 캐릭터가 삭제되고, 배경이 경성 한 시대로 한정되고, 케이가 물을 무서워하는 설정이 빠진 이유 등 트라이아웃과 본 공연의 변화에 관해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성종완 오늘 작가님이 못 오셔가지고… 그, 목소리가 안 나오는 상황이 돼가지고… 대신에 굉장히 많은 내용 보내주셨거든요. 먼저 읽어드리고 더 자세한 거 말씀드릴게요. 읽겠습니다.

한재은 물에 대한 설정은 브람 스토커에 기반한 설정인데, (성종완 <드라큘라>를 말씀하시는 거 같아요, 네, 브람 스토커가 작가인거 다 아시죠? 죄송해요.) 그대로 두기에 여러 논리적인 오류나 걸리는 부분들이 있어 그걸 다 설명하자니 그 전개에 방해가 되고 설명을 안 하자니 의문으로 남는 부분이 있어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관에 흙을 깔고 물을 건넜다, 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소설이 아닌 무대에서 설명할 만한 지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 극에서는 여러 설정을 적용해보다가 뱀파이어의 몇몇 특성들을 배제하기로 했습니다. 십자가, 은, 마늘에 대한 공포, 거울에 비치지 않는 특징들을 삭제하고 물리적인 특징만을 남겨 보았습니다.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 흡혈을 하는 것, 뱀파이어가 되기 위해 흡혈을 당한 후 뱀파이어의 피를 마셔야 되는 것, 그리고 신체적인 운동능력이 월등한 것, 그 외에 어둠 속에서 빠르게 상처가 재생되는 것. 이런 약간 이과적인, 물리적인 특성들만 남겨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경성에 관한 부분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의신이 가진 의학에 대한 한없는 믿음은 당시 처음 문물이 들어와 모든 것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현대 초입 특유의 기세가 있어 가능한 것 같아요. 조선 시대부터 혼자 살아온 뱀파이어라는 설정이나, 뱀파이어에 대한 기존의 미장센을 걷어 버리는 것도 그 시대라 가능할 수 있고요. 당시 연구하던 우생학도 피와 기질에 대한 연구와 관계가 많은데, 콜레라가 O형에게 잘 발병되는 병이기도 하다고 적어주셨네요. 다음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이런 면도 잘 녹여보고 싶네요.

성종완 저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솔직히 ‘이게 무슨 내용이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제가 뱀파이어물을 많이 보지 않았어서 그런지 몰라도, 되게 질문들이 많이 생기는 대본이었어요. 그래서 작가님과… 근데 트라이아웃을 제가 못 봐가지고… 그때 어떤 점들이 좋았고, 그걸 비교해서 어떻게 바꿨다, 라고 접근하기엔 좀 그렇고, 제가 처음 받았던 대본을 기준으로… 뱀파이어. 경성 시대 뱀파이어에 대한 이야기. 너무 흥미롭고 쭉쭉 읽었는데 질문들이 굉장히 많아지는 대본이어서, 그런 질문들을 하나하나 작가님과 주고받는 과정에 좀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은 삭제되거나 압축되거나 했던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여자 캐릭터의 존재 이유도 묻게 되고, 그런 과정속에서 그랬던 거 같고… 시간을 꿰뚫고, 해방 이후에도, 현대까지도 나오는 그 과정이 저한테는 조금… 맥이 잘 짚이지가 않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에서도 대화가 있었고.

뱀파이어의 특성 같은 경우도, 사실 뱀파이어물이 참고할 만한 작품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근데 그 작품마다의 규칙이 또 다 다르더라고요. 어떤 작품에선 막 날아오르기도 하고… 배우들이 이 이야기도 참 연습과정에 많이 얘기했던 것 같아요. 과연 우리가 어떤 능력이 있나. 주광이 같은 경우는 막 사라지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지문도 비슷하게 있어서. 본인은 이렇게 사라지고… 근데 그걸 내가 무대에서 연출할 수가 없다 주광아, 그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최대한 의사인 의신의 입장에서 다뤄질 수 있는, 어떤 유전적인 변형, 특징으로 접근했어요. 그래서 똑같은 존재지만 약간, 우리 작품 안에서 V인자라는 규칙이 있죠. 그 규칙의 안에서 조금 달라질 수 있는 부분들만 이렇게 한정해서 표현했던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물을 무서워하는 설정도 빠지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트라이아웃 때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서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중점을 두었다면, 본 공연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극에 변화를 주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성종완 저 다음에 배우들 순서도 있는 거죠? (사회자 네, 그럼요.) 지루하진 않으시죠? 네. 그 먼저 작가님 답변을 읽겠습니다. 쓰인 대로 읽겠습니다.

한재은 가장 큰 이유는 네오이다. 사실 배니싱은 원래 뱀파이어의 장례라는 제목의, 열 명이 등장하는, 미지와 케이의 로맨스도 있고, 현대 병원의 의료 비리도 다룬, 그 때도 명렬은 있었다, 괄호, 밝고 코믹한 현대물이었는데,

성종완 그 때도 나쁜 아이였나? (웃음)

한재은 이 이야기가 네 명으로 압축된 트라이아웃을 거쳐서 제작사와 연출가의 의견으로 인물이 세 명으로 축소되고, 시간도 한정된 현재의 배니싱이 되었다. 현대의 관조적인 시선을 담당하는 미지가 사라지고, 이런저런 설정이 달라지면서, 근원적인 외로움을 다룬 표현이 좀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세 명의 상황이나 이야기에 맞추어 타인에 대한 이해, 쪽으로 집중했고, 창작 과정에서 이쪽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면서 이 주제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성종완 사실 작가님이 굉장히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나시거든요. 그래서 대본을 읽으면서 그런 감수성이 느껴졌고, 다른 뱀파이어물에 대한 참고할 만한 작품도 있었지만 저는 이 세 인물의 이야기가, <파수꾼>이란 영화가 떠올랐어요. 거기에 이제훈이란 배우가 나오고, 그 세 명의 고등학생들이 나오는건데… 그들이 굉장한 친군데, 삼총산데, 조금씩 조금씩 그들의 그 순간의 어떤 감성들에 의해서 어긋나고 어긋나고, 결국 누군가 파멸시키고 스스로 파멸하고… 뭐 이런 약간 중2병 걸린 남자아이들의 사춘기, 그 예민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그런 감수성이 느껴지더라고요. 배니싱 대본을 받았을 때.

제가 봤던 버전. 모르겠어요. 트라이아웃에서 얼마나 바뀐 버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받은 대본에서는 이 세 인물이 이렇게 섬세하고 예민한 어떤 감성들로 어긋나고, 뭔가 손을 뻗고, 거두고, 할퀴고, 또 움츠러 들고 이런 과정들 속에서 그 과정을 좀 섬세하게 다뤘으면 좋겠다. 그것이 작가님과의 이야기 도중에 어떤 타인에 대한 이해, 쉽게 오해하고, 또 어렵게 어렵게 이해하고… 작가님이 이 뒤에도 적어준 내용을 아까 봤는데,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은가,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그런 견해도 달아주셨는데, 그런 쪽에 좀 공감이 이루어져서.

그런데 저는 여기 외로움이란 감정에 대한 중점도 여전히 포함해서 가져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것이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케이는 이미 삼백 년 동안 그런 시간을 보냈고, 또 의신은 같은 입장이 되었고, 명렬은 앞으로 이 극이 끝난 이후에 어떠한 삶을 살게 될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 외로움이란 정서도 사실은 타인에 대한 이해에 앞서기 전에 이미 깔려 있는, 중점이 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트라이아웃때부터 참여해 주신 배우님이 계신데요. 극이 수정되면서 케이의 캐릭터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본 공연 케이를 만들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주민진 배우님.

주민진 사실 신경은 쓰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되게 무심하게 들리실 것 같은데, 이런 인물이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사실 평소에 작업할 때도 하지 않아요. 항상 제가 생각하는 거는 어떤 인물이든 내 옆에 있는 존재로서 확인을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역사를 가진 인물이 어떻게 살았고, 이런 역사를 가진 인물이라면 지금 내 눈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시간대에는 어떤 반응일까, 어디에선 어떤 반응일까가 사실 저한테는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주민진도 부모님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친한 친구들 앞에서의 모습이 계속 달라지듯이 케이라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변해갈까가 그게 저한테 제일 중요했고, 그래서 억지로 ‘트라이아웃 때와 바꿔야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없고요.  너무 좋은 역할이잖아요, 배우한테 욕심나는. 인간이 아닌 존재. 저는 만화, 혹은 미술, 조각 이런 걸 다 너무 좋아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케이 안에 담겼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에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대 어딘가에서 서 있을 때도, 그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어떤 게 좀 느껴졌으면 좋겠고. 미술적으로도. 그래서 케이가 나와있는 동안은 굳이 신경을 썼다, 라고 하나로 축소를 하자면, 케이가 나와 있는 순간에는 그거 자체가 어떤 동사나 감정이었으면 좋겠다. 동사, 그쵸? 그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해서 열심히 만들어 봤는데… 고맙습니다.

캐릭터에 관련된 질문 중에, 주민진 배우님의 ‘케이의 행동들을 보면 고양이 같다’라는 의견을 주신 분들이 많아요. 정말 고양이의 행동을 참고하셨는지, 아니면 다른 참고하신 동물이나 인물들이 있는지 궁금하고요, 그거는 에녹 배우님이나 이용규 배우님도 다른 혹시 따로 참고하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주민진 네. 저는 집에 TV가 없는데, 혼자 유튜브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찾아보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들은 자연의 상태인 거잖아요. 인간은 교육된 상태고. 인간도 동물이라고 쳤을 때,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예를 들어, 모글리? 이런 것들을 상상해 보아도, 자연 상태에서 자라났을 때 우린 교육된 태도를 만들어내는데 그들은 본능적인, 살아남기 위한 어떤 태도를 만드는 거죠. 그 순간에. 주민진은 교육된 것으로 ‘사람을 대할 땐 이렇게 대해야 된다’는 걸 만들어낸다면 동물적인 감각으로써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그게 제일 저한테는 중요했고, 그래서 사실상 고양이나 이런 걸 참고한 건 아니고요. 야생동물들을 좀 많이 봤어요.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고 그들이 어떻게 움직였을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동물들을 종류별로 많이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비슷하더라고요. 살아남기 위해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있고. 존재… 인간이랑 조금은 다른데, 자기 존재가치를 스스로 느끼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 있고. 예. 그런 것들을 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많이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용규 배우님께서는 혹시 참고하신?


이용규 저요? 원래 극을 대할 때 뭔가 다른 거를 참고를 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뭔가 그런 걸 흉내낼 거 같아서… 그래서 저는 좀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머릿속에서. 어떻게 하면 얘는 왜 이런 말을 할까, 얘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저기에 왜 가지? 그런 걸 많이 상상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제 얼굴이나 그런 게 좀 그려지더라고요. 이런 감정이겠구나, 이런 정서로 움직이겠구나. 그래서 최대한 많이 그런 상상을 많이 했었어요. 우리 세중이랑도 얘기 많이 했었고, 특히 연출님이나 형님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인물 구축해 가는 거는 많은 도움을 받았던 거 같아요. 저는 그렇습니다.

네, 에녹 배우님.


에녹 어… 저는 동물 중에… 캥거루를 참고했습니다. (웃음) 죄송합니다. 농담이고요.

주민진 어? 닮은 것 같아!

성종완 사슴 닮지 않았어? 사슴?


에녹 사실 뭐, 저 역시도 용규 배우하고 많이 비슷해요. 어떤 그런 흡혈귀의… ‘목이 말라’를 부를 때나 그럴 때, 어떤 모습들은 상상을 통해서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랬을 것이다. 그 목마름이 인간적인 목마름이 아니라 짐승, 흡혈귀의 목마름이라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것들을 상상을 많이했죠. 저기 벽 잡고서 이렇게 돌렸다가 이렇게 돌렸다가, 이런 것들을 많이 했습니다. 표정도 뭐 이렇게 지었다가. 집에서 제가 그러고 있으니까 어머니가 뭐 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웃음) 네. 그냥 이랬습니다.

배니싱은 초반에 프리뷰 기간이 있었는데요, 프리뷰 기간 동안에도 조금씩 공연이 보완되고 수정되었어요. 그 중에서 명렬의 ‘인정받고 싶어서.’라는 추가된 대사에 관한 질문이 많이 있었습니다. 굳이 대사를 추가하신 이유가 따로 있으실까요?

이용규 프리뷰를 하고 나서 주변 지인 분들이랑 팬 분들이랑 얘기해주셨던 게 그거였어요. ‘왜 변해요 얘는? 왜 중간에 왜 갑자기 저렇게 나쁜 애로 변하는 거예요?’ 이 얘기가 너무 많아서 연출님이랑 형들이랑 공연 와가지고, 연습실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거든요. 저희는 안에 내재된 게 많다 보니까 이 정도면 비춰질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뭔가 텍스트랑 어떤 장면으로 인해서 그런게 표현이 안 되다 보니까 제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프리뷰 지나고 연출님이랑 형들이랑 얘기하면서 ‘성공하고 싶다’, ‘형을 닮고 싶어서’ 이런 말을 했었었는데, 명렬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한 걸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성공하는 것보다는 의학계에서, 이제 형, 의신이 형한테 인정받고 싶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 전 사랑하지만 가족들은 절 사랑을 안 해요. 그래서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아이기 때문에 그런 걸 형한테서 더 찾으려 노력했던 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형이 절 점점 밀어냈을 때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적으로 봤을 때 어두운 면을 많이 갖고 있는 아이죠. 모든 사람은 집안에서부터 어릴 때부터 받은 가정환경이나 그런 교육으로 인성이 잡히잖아요. 얘는 그런 게 안 되어 있는 아이 같아서. ‘인정받고 싶어서’란 단어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얘의 마음은 순수했던 마음이지만 결과적으로 많이 비뚤어지고. 그래서 그 단어를 선택했던 거 같아요. 저 말 잘하고 있는 거 맞죠?

사회자 네. 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공연이 그렇듯이, 같은 캐릭터여도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는데요, 배니싱은 볼 때마다 새롭다는 말씀을 많이들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더블이다 보니까 두 배우의 다른 점을 찾는 재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의신이 케이에게 V인자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케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그에 따른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인데, V인자에 대한 설명이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하십니다.

에녹 먼저는, 연출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못하겠죠? 열어 주셔서 저희가 그렇게 하게 된 거고.

제가 생각했을 때에 저 자신이 세운 논리라는 게 있는데, 부족한 지식으로 저희가 세운 논리 안에서 진행을 했던 거거든요. 형님하고도 그런 얘기를 살짝 맞췄는데 그 부분이 약간 의견이 안 맞았던 부분들이 있었고요. V인자를… 백혈구에 대한 부분인데, 이 백혈구가 없고 있고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크셨을 거예요, 보셨던 분들은. 제가 생각했을 때,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백혈구라는 존재가 있으면 일단 V인자가 들어오면 그거를 공격하는 존재로 봤을 거고, 지금처럼 형님께서 설명하시는 것처럼 V인자가 백혈구까지 함께 이렇게 끌어안는 모양이 된다고 한다면 더 큰 논리적인 비약들이 생길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 백혈구가 지금 이 케이의 상처 치유 능력을 보면 엄청나게 뛰어난데, 그 치유 능력을 따라가려면 백혈구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야 된다라는 설정이 그것도 역시나 더 큰 논리를 불러와야 되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고.

또 세 번째는 이 백혈구의 특징이 상처가 나고, 그 상처를 치료하다 보면 딱지로 앉는 게 결국 백혈구들의 시체라고 알고 있거든요. 근데 그런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이 두 명이 딱지가 앉았을 때 떨어지는 것까지 연출이 되어야 되는데, 그게 지금 안 되고 있잖아요. 너무 순식간에 상처가 나으니까… 그래서 연출님하고 얘기했던 것은 그 능력 자체가 전부 다 V인자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어떻겠느냐. 상처 치유 능력, 그리고 빛에 대한 민감성, 그리고 흡혈에 대한 욕구가 이 V인자 자체에 들어 있고 그 때문에 백혈구는 이제 나오지가 않고… 대신 이제 그런 생각은 했어요. 만약에 이 상처가 치료가 되면 다시 백혈구는 생성이 되겠죠. 그 안에서 논리를 세웠던 거였죠. 형님도 다른 논거를 가지고.

성종완 무슨 학회에 온 것 같으시죠? 이런 토론을 연습실에서 하시는 거예요, 두 의신이가. 근데 도현이 형 말을 들으면 그 말도 맞는 것 같고. 또 다 각자의 이론이 있을텐데. 저한테 중요했던 거는 의신이를 연기하는 두 배우가 확신 있게 자기 이론을 연기하길, 그게 제일 중요했던 부분이어서. 사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본인이 확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이론을 말할 수 있게끔 조금 다르게 과정이 나왔던 거 같습니다.

케이의 초자연적 능력에 대해 문의주신 분들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케이는 초자연적 능력이 있는 캐릭터인가요? 있다면, 커튼을 치고 의신을 굉장한 힘으로 제압하잖아요. 그 외에 다른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있다면, 왜 의신은 그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주민진 제가 대답하나요? (사회자 네.) 이 부분에 대해서 연습실에서 정말 토론을 많이 했어요. ‘케이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다가, 우리 모두가 하나로 모아진 거는, 우리가 정말 현실 세계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까지 만들어 보자 했어요. 그래서 트라이아웃 때 얘기를 잠깐 해보자면 그때는 제가 막 이렇게 벽을 걸어 다니는 적도 있었고…

에녹 어, 정말요? (주민진 네.) 벽을 걸었다고요?

주민진 예. 아 근데 그거는 약간 이제 의신이 책상이 있어서, 그래서 이렇게 책상을 대고 (에녹 떴어요?) 옆으로 이렇게 걸어 다녔었는데… 그러니까 이런 것도 있었고, 물건을 날리는 것도 있고, 최면도 걸고 막 이랬었는데, 재밌었는데. (웃음)

이제 여기서 얘기를 하다가 우리 좀 더 현실에 존재할 법한 걸 만들어 보자 하다 보니, 그러면 커튼이 젖혀지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의신은 그걸 우연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고 얘기를 한 거죠. 그렇게 얘기를 하다가. 그러면 아, 그럴법 하겠다. 근데 하필 그 순간에 케이가 손이 움직였던 거고. 불이 꺼졌던 거고. 이런 얘기들을. 케이가 밖에서 배선을 다 잘라 놓고 들어와서 얘가 이렇게 해서 꺼졌을 거다. 근데 사실 저는 관객 분들이 더 많이 상상하셨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이런 얘기 하는 게 조금은 두려워요. 저도 한 명의 관객으로서, 저는 제가 공연을 볼 때 엄청 상상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더 상상할 거리를 저는 연기나 텍스트나 이런 거로 더 드리고 싶은데…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와서, 케이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우리가 그때 마지막으로 정리했던 거는 힘이 일반 사람에 비해 굉장히 세고, 뭐 손짓으로 어떤 바람을 좀 다룰 수 있을 정도?

에녹 그런데 의신이 이게 없었던 이유는, 여기는 삼백 년 된 능력 있는 뱀파이어고 저는 고작 몇 년 밖에 안 된, 그러니까 그걸 아직 다루지 못하는… 제 안에 있는 능력이라도 아직 발휘하지 못하는 정도로 설명해 보면 어떻겠느냐, 라고 얘기가 됐었죠.

주민진 그쵸. 그리고 이게 상처가 났을 때, 낫고 피를 마셔야 하는… 정말 증상이 있더라고요. 실제로.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예전엔 뱀파이어로 오해를 받지 않았을까, 이런 얘기를 계속해서 많이 했었는데. 그럼 그런 존재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과 현재에서도 있을 법한 까지 가보자, 해서 만들어진 게 아마 지금 케이의 능력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좀 해봅니다.

연출님 따로 말씀해주실 거는?


성종완 진짜 있을 수도 있잖아요, 뱀파이어가. 지금 이 시대에도. (웃음) 케이가. 만약 의신이 죽지 않았다면… 배니싱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러면 그때는 유일하고 최초지만. 전혀 감염이 되지 않겠어요? 이 자리에 와 있을지도 모르죠. 나의 종족을 이야기로 삼았다. 근데 보통 우리가 오해를 할 때, 그게 부풀려지잖아요. 예를 들어서 우리 극중에서도, “키가 9척이래!” 9척이면 정말 큰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부풀려지고. 근데 막상 알고 나면은 딱 그 정도. 흡혈과… 그래서 참고했던 작품은 <렛 미 인>에 그 소녀 정도의 특성이었어요. 거기 나오는 정도. 빛에 대한 민감성, 재생 능력, 흡혈의 욕구. 그리고 한 번 병원을 기어올라가는 정도, 한 번 나오잖아요. 그 정도로만. <렛 미 인>이 굉장히 리얼리티가 있는 뱀파이어물이잖아요. 그 정도로 우리가 우리 작품에 케이의 능력을 투영시켜보자, 라고 했던 부분이고. 사실 어느정도 염력 정도는, 저는 굳이 뱀파이어가 아니어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좀 나이 드신 분, 유리 겔라라는 분 아시는 분? 그런 분은 막 숟가락도 구부러뜨리고 그런단 말이에요.

에녹 맨 처음에 저희 그런 것도 있었어요. ‘나를 마셔’ 그 장면 있잖아요. 그때 저를 최면술을 이렇게 걸어가지고… 그런 것도 저희가 한 번 해 본 적도 있어요. 그런 능력이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주민진 그런 부분에서 얘기를 진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2~3주 동안 연습하다가 모여서 얘기하고, 연습하다가 모여서 얘기하고, 이런 게 되게 많았어요.

케이는 그럼 초능력이 있는 친구인 거죠?

주민진 ‘초’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고, 능력이 좀 있다?

성종완 여러분들도 연습하면 하실 수 있어요. 네. 그러니까 저는 장풍도 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자동차도 개발… (주민진 배우와 이용규 배우가 마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오해. 주민진 배우는 두 손으로 장풍을 모으는 흉내를 내고 이용규 배우는 그것을 보고 있었음) 내가 부끄럽니?

주민진 아니아니요. 아니, 쏠려고요! 쏠려고! 쏠려고! (웃음)

이용규 준비중에 있어요.

성종완 어! 자동차도… 그러니까 도구의 인간이 되면서부터 인간의 초능력을 잃어버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축지법도 사실은 실제 있었던 능력이고, 장풍도 실제 있었던 능력인데 이제 필요가 없잖아요. 총도 생기고, 자동차도 생기고 하니까.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한계를 제한 짓지 맙시다. (웃음)

예 좋은말씀… (웃음) 그러면 명렬이 얘기를 잠깐 다시 해보겠습니다. 명렬이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물인데요, 정작 연구 발표 후에는 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나고 매우 격분을 하잖아요. 그 심경의 변화와, 아버지와의 전화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이용규 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명렬이 같은 경우는 가족의 사랑을 못 받은 아이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제가 갖고 있는 명렬은. 근데 아버지 직업 자체가 이제 의류… 의류래. 의학! (웃음) 의학… 의학의… (웃음)

주민진 동대문쪽에 계셨구만? 아버지가. 신평화큰손! (웃음)

이용규 의학 종사자인데, 거기에 좀 디테일하게 해서 생각한거는 제약회사 사장님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 아이디어를 준 거는 도현이 형인데… 어쨌든 이 V인자를 빼내서 인류에게 이득이 되는 건 영생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다쳐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그런 걸 알았을 때 제가 그 논문을 발표했다면 아버지 입장에서는 더 프레스를 가했겠죠. 능력이 없던 저…가 아니라 뭔가 너 있구나, 그래서 더 프레스가 있고. 그래서 전화를 하면 뭔가 저는 그런 기대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런 걸 내가 발표하면 아버지한테 인정을 받을 수 있겠지?’ 근데 그 안에 아버지의 마음엔 제가 없는 거죠. 그 약에 대한 얘기만 하고. 그래서 더욱 더 자기를 찾으려고 얘기를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추가했던 말들 중에도, 뒤에 조수한테 얘기할 때 너도 날 무시하는 거냐고 얘기도 하고, 의신한테 돌아가서 얘기할 때도 내가 지금 얘기하고 있잖아. 자기에 대한 거를 세우고 싶었어요, 제 안에서. 나도 있어. 나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야. 왜 나는 없는 거야? 왜 날 배제해? 그런 걸 좀 보여주고 싶었고.

심경 변화는 어쨌든 그런 프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아버지가 없을 때, 전화를 끊었을 때는 제가 참고 있던 걸 표출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말들도 하고, 이건 내 연구야라는 얘기도 하고. 그리고 통화 내용은 그 프레스에 대한 내용? 언제 발표가 되는거냐. 너가 지금 무얼 어느 정도의 연구를 하고 있는거냐. 저는 없는거죠. 그 연구만 있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했던 것 같아요. 제가 본 명렬은 네 우선  그렇습니다. (사회자 네, 명렬…) 아, 저 슬퍼요. 명렬이가 진짜 슬프거든요. 얘가 정말 슬퍼요.

에녹 동정은 구하지 맙시다.

이용규 여기 마음 어딘가 지금 자꾸 아려요.

주민진 난 명렬이한테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꼭 선물하고 싶었어. (웃음) 인정 욕구에 대해서…

사회자 네. 꼭 책 선물받으시길 바랍니다.


성종완 근데 사실 저는 이 공연 올려놓고, 저의 솜씨의 부족함이었겠지만, 저는 되게 명렬의 시각으로 봐주길 바랐거든요. 일단 전 명렬이 너무나도 잘 이해가 돼서, 근데 물론 텍스트적으로 그의 어떤 내면의 변화들을 좀 잘 다뤄주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저는… 우리 용규배우가 잘 해줬죠. 잘 다뤄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는데, 사실은 이 작품이 케이와 의신의  둘의 관계가 이해되는 이야기지만 명렬의 시각으로, 명렬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그런 구성을 조금 기대를 했었는데. 그런 면에서 전 제가 갖고 있는 많은 성품들을 명렬이에게 넣었거든요. 그래서 그 변화가 그렇게 급격하다고 생각을 못 했어요. 연출과정에서. 근데 제가 좀 보편적인 인물이 아니었던 모양인 거 같아요. 근데 어쨌든 아 너무 슬프다고 하니까… 나는 너… 너 인정해. 너를. 명렬이 너무…

에녹 나도 인정해요. 형으로서 인정해.

성종완 명렬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용규 …감사합니다!

네, 명렬이 많이 사랑해 주시고요. 그 다음 의신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의신은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린 케이가 많이 원망스러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이 완성된 후에  케이에게 주려고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요?

에녹 거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는데요, 일단은 가장 큰 거는, 의신 자체도 이기적인, 어떤 면에선 이타적이지만, 이기적인 인물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쨌든 일련의 벌어진 일들, 내가 케이를 끌어들여서 사람들이 죽고 또 저 역시도 이제 뱀파이어가 되고, 이런 과정들 자체를 그거를 인정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면죄부를 주려면, 이 모든 일어났던 것들이 내가 실제로 귀신도 아니고, 난 괴물도 아니고, 난 사람이고, 이건 병이고, 그런 병은 고쳐야 되는 거고, 이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도 그 병 때문이고. 그 병을 고치는 게 저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어떤 일이라고 생각을 했던 게 가장 컸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게 맞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스톡홀름 증후군이 살짝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케이와의 어쩔 수 없는 동거를 통해서. 그를 증오하지만, 어쩔 수 없는 동거를 통해서 애착을 갖게 된… 그리고 어느 순간인가는 그랬을 것 같아요. 이 의신이란 인물이 어떻게 보면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적인… 케이도 연구의 대상으로 봤던 거잖아요. 사람을 연구대상으로 봐서 자기의 꿈을 실현시키는 게, 그게 어떤 정의, 그게 인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의신이가 한 뱀파이어를 만나서, 증오했지만… 그와의 동거를 통해서 더 인간 같은 것들을 받은 거죠, 거기서 변화되면서. 제가 갖게 된 애착? 사랑? 그것 때문이라도 고쳐 주고 싶다는 마음도 아마 들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두 개가 공존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 케이는 뱀파이어가 된 후 원래 자리로 의신이 계속 돌아가려고 연구를 하잖아요.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동족으로 만든 걸 후회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라도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주민진 시점이 어디죠?

의신을 뱀파이어로 만들고 난 후. 계속 둘이 대립을 많이 하잖아요. “나는 연구를 계속할거야.”

주민진 아~ 아, 그럼 아마 시간이 좀 많이 (사회자 좀 흐른 후일 것 같아요.) 흘렀을 때 같은데. 저는 어쨌든, 이거를 어떤 인물로서 바라봤으니까. 주민진도 그렇더라고요. 하루에도 생각이 몇 천 번씩 바뀌고. 아마 제가 저를 합리화시키느라, 나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 나의 거울 같은, 혹은 다른 나를 인지해줄 수 있는 이런 눈이 너무 필요했기 때문에.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그 순간에 너무 그게 합리화가 된 상태에서 물었죠. 근데 그 시간이 흐른 후, 이제 의신이의 태도 변화를 보아 가면서, ‘아, 내가 이런 실수를 또 저질렀구나.’라는 시간을 함께 보냄과 동시에 너무 미안한 마음과, 그러면서도 이제 사람이랑 계속 비슷하게 보면 나를 합리화시키는 거죠. ‘그치, 그래도 같이 있으니까 좋지?’  ‘같이 있으니까 좋지?’

근데 의신이는 이제 다른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그때조차도, “나 연구를 더 하고 싶어.” 그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부딪쳤을 것 같아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래. 어쨌든 저 친구도 하고 싶은 게 있어. 보내줘야 돼.’ ‘근데 나 너무 외로워.’ 이 두 가지가 끊임없이 부딪쳤을 것 같아요. 네… 인간도 그렇듯이. 그러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혹은 이렇다 저렇다, 의 어떤 한 가지 노선이 아닌 끝없는 혼란. 인간… 제가 너무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되는데, 인간은 누구나 그렇듯, 끝없는 혼란 속에 케이도 있지 않았을까. 삼백 년을 지났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가고… 그렇습니다!

뱀파이어가 된 의신은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마지막에 명렬을 물려는 케이를 말렸음에도 본인이 명렬을 물잖아요. 어릴 때부터 명렬은 의신이 가장 아끼는 동생이었는데, 그렇게 사람을 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가졌던 의신이 명렬을 문 이유가 있을까요?

에녹 그냥 가장 단순하게는 그 순간을 보시면 더 좋을 거 같기도 한데, 일단 의신의 뱀파이어의 본성이 그 순간 나왔다고 볼 수 있죠. 또, 나를 위해서 희생하는 이 케이를 공격하는 명렬을 보고서, 뱀파이어의 본성이 바로 살아났으니까. 그거 자체가 가장 단순한 목표가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일단 뱀파이어니까. 인간을 무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도 아마 대의적인 명분이 분명히 이 안에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명렬이가, (사레 들려서 헛기침. 이용규 배우와 주민진 배우 둘 다 물병을 내밀었는데 이용규 배우의 것을 받음) 명렬이를… 하… 고마워. 명렬이를 살려둠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관련된 것들이 또 크겠죠. 더 많은 희생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이게 큰 병인데 이것들이 퍼질 것에 대한 부분들도 염려가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것들을 다 끝내는 어떤 한 방법으로, 여기서 더 가면 안 되니까, 그래서 명렬을 물 수 있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성종완 사실 저는 더 매정하게 죽여 없애기를 디렉션을 드렸는데. (에녹 맞아요.) 근데 아마 연기 시점, 연기를 하시는 배우 분들은 이미 명렬과의 애착이, 제가 생각하는 그냥 바라본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훨씬 더 거기에 감정적으로 충분하게 표현이 아주 잘 해주고 계시죠. 감동받는 부분이고. 마침 지난 주 JTBC <전체관람가>란 프로그램에서 구미호 영화가 짧게 나왔어요. 창감독이 만드신. 근데 거기 송재림이 구미호인데 되게 컨셉이 비슷… 저보다 훨씬 좋은 솜씨로 만드셔서 감탄하면서 봤는데 그 송재림도 붙잡혔어요. 사람을 죽였다는 것 때문에. 근데 앞에 있는 국선변호사한테 나가시라고, 그때까지는 아주 인간적인 어떤 따뜻한 감성으로 그랬는데. 결국에는 구미호가 된 다음에는 그 국선변호사를 죽여 버리는. 그 본성… 본인이 갖고 있는 그 본성에 대한, 그 얘기가 또 작품이랑 잘 연결되는 거 같아서 말씀드려 봤습니다.

마지막에 결국 케이는 죽음을 선택하잖아요. 죽음을 선택한 이유와 케이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주민진 먼저, ‘죽음을 선택했다’ 라고 하나로 얘기하기가 조금 저는 어려워요. 뭐냐 하면, 케이의 입장에서 계속 생각을 해 본 건… 하나의 인생이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생이라 함은…어 왜 이렇게 나 되게… (에녹 되게 멋진데?) 아, 이거를… 케이를 준비하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인생이라 함은… 너무 짧게 단편적으로 얘기해서 죄송한데, 태어남이 있고, 어떤 삶이라는 게 존재를 하고, 죽음으로써 마무리되면, 이게 하나의 삶이잖아요. 인생이고. 근데 케이는 인생이 아닌 거죠,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시간도 의미가 없어지고, 주위의 사람도 의미가 없어지고, 존재 가치에 대한 인정도 없어지고, 내가 나를, 존재를 인정한다 쳐도 의미라는 걸 찾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근데 어쨌든 죽음이란 걸 가질 수 있게 된다면… 하나의 인생을 완성시킬 수 있는, 얕은 말로 돌파구? 그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하나 필요한데, 도저히 찾을 수 없었는데, 의신이 그런 존재가 되어 준 거에요.

그러니까 선과 악을, 어떤 종교적 개념이 아니라, 삶의 개념으로 봤을 때 저한테 이득이 되면 선이잖아요. 너무 이기적이긴 하지만. 인간, 모든 인간이… 모든 인간으로 단정 지어서 죄송해요. 나한테 이득이 되는 쪽으로 모든 선택을 하게 되고, 케이조차도. 삼백 년 하면 굉장히 많아 보이지만 비슷한 기억들이 같은 뇌에 저장이 되었을 때 그렇게 길게 느껴졌을까? 그때 당시에도 그냥 너무 외롭고 지쳐 있는 어떤 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의신한테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여러 가지 마음이 많이 들지만 하나의 인생이 너무 갖고 싶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네.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신도 사람으로 돌아가기 위해 백신 연구를 계속 하지만 케이가 옆에서 죽을 때 햇빛 속으로 같이 가는 걸 선택하잖아요. 그 이유와 의신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가치는 무엇이었을까요?

에녹 어렵네요. 일단 그 죽기 직전 제가 죽음을 선택했던… 했었을 때는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 당시라고 생각해도. 제가 지금 연기하면서 굉장히 복잡미묘하거든요. 제가 가지고…갖게 되는 감정들이. 일단 케이를 이제까진 계속 증오의 대상, 혹은 고쳐야 하는 대상에서 이 순간 뭔가 하나 깨닫게 되는, 그러니까 이미 그런 마음을 가졌더래도 이 순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거든요. 저희 죽기 직전의 대화 속에서. 사랑하는 존재가, 그렇게 해서 이제 그게 결국엔 사랑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 사랑하는 존재가 죽어갔을 때에 느껴지는 어떤 상실감? 그게 굉장히 클 거라고 일단 첫번째로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저희의 대화 속에도 그게 있는데, 결국 “우리 둘뿐이야.” 이런 얘기를 한단 말이죠. 근데 그 중에 하나가 죽었을 때, 케이는 그것을 감당했지만 아직 혼자이지 않았던 의신이 갖게 되는 어떤 두려움? 이런 것도 분명히 그 순간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뭐… 그 외에도, 글쎄요… 여러 가지 다양한 어떤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을 거고, 스스로에게도 그런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요. 자기를 통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요. 지금 저희가 이러한 대화를 하고 “나와 영원히 살자.” 이런 얘기를 하는 와중에 있어서도 그 밑바닥에는 방금 전에 내가 명렬을 물었고, 또 내가 그 안에 사람들을 죽여 왔다는 어떤 죄책감도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복잡한 여러 가지 감정들을 통해서 선택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그리고 아까 전에, 의신이가 생각하는 가치. 의신이가 뱀파이어가 된 이후에 대한 가치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변해가는 과정이니까? 근데 의신이 처음에 생각했었던 거는, 전 그거라고 생각했어요. 물질적인 삶. 그러니까 정신적인 것이 아닌, 물질적인 생명. 그것이 얘한테는 가장 크지 않았을까. 자기 부모의 죽음을 통해서 갖게 된 어떤 트라우마로, 가장 최우선은 생명, 삶. 그것도 어떤 정신적인, 더 나아간 것이 아닌, 물질적인, 지금 살아 있는 것, 생명. 죽은 사람도 그렇게 해부할 수 있었던 게, 이건 죽은 거니까. 죽은 사람을 통해서 산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이란 어떤. 그게 이 친구의 어떤 최고의 가치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케이와 의신이 모두 죽고,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 명렬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 것 같으세요?

이용규 그냥 제 머릿속 상상에서는. 연습실에서는… 쉽게 그냥 한 단어로 피의 축제? 약간… (웃음) 어찌 됐든 절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제 없는 거잖아요. 얘 삶에선. 그러면은 더 이상 살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싹 다 죽여버려? 약간 (웃음)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근데 요즘에 계속 공연하면서 느껴지는 거는, 되게 외롭더라요, 그 순간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고, 놓여 있는 형의 옷을 볼 때도 마찬가지고. 더 이상 날 인정해줄 수 없단 건 똑같지만. 자기가 어쨌든 변질되어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거잖아요. 그런 후회도 있을 거 같고. 그런 걸 다 안고 혼자 살아가지 않았을까? 외롭게? (주민진 한 번 느껴봐.) 으음! 몇 년을 살진 모르겠지만 그게 제가 정말 좋아했던 의신 형을, 어쨌든 제 욕심으로 사람들이 다 죽게 된 거잖아요. 그런 걸 사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연구를 하진 않으셨을 거 같아요?

이용규 전 안 했을 것 같아요. 그럴 능력도 없고. (웃음) (에녹 왜애~?) 저는 명렬이가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녹 아니야~) 그래요 형?

주민진 그때 이건 제 취향으로 연습실에 제안만 했었던 건데, 맨 마지막에 에필로그 얘기하다가 명렬이 지금, 2017년에 볼 수 있는 의상을 입고 한 번 지나갔으면 좋겠다, 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이렇게 이 시대의 공연이 다 끝나버리고 에필로그, 커튼콜 전에 딱 한 장면. 2017년에 갑자기 이런걸 입고 지나가는구나… 그런 상상을 한 번 해본 적은 있었어요.

다시 공연 내용으로 하나 돌아와서요, 공연 중에 의신과 케이가 갈등을 겪게 되는 부분인 그 마츠모토의 죽음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잖아요. 비명 소리가 여자인데,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당시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마츠모토는 여자였던 걸까요?

한재은 마츠모토의 시신을 발견한 간호부의 비명소리입니다. 마츠모토는 일본인 남학생이고, 경성의전에 다녔던 실제 남학생의 이름을 따 온 것입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경성의전의 일본인 학생, 동급생에게 칼질’이라는 기사를 보면 송본(松本), 이라고 쓰고, 마츠모토라고 읽는 거죠? 송본이라는 학생이 “조선인은 기질이 야만적이다”라고 해서 한국인 학생들과 싸움이 벌어졌고, 그러다가 송본이 칼을 빼서 동급생을 찔러서 경찰서에까지 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조선인 학생들이겠죠? 퇴학을 주장했지만 경찰이 ‘학생들 사이에 싸울 수도 있다’며 조사를 대충 끝내버려서 별다른 처벌이 없었다고 합니다. 막말도 한 번 하고 칼까지 휘두른 나쁜 놈이라 여기서 죽여버렸습니다.

성종완 되게 귀여우시죠? (웃음) 실제 그 목소리는 저희 음악 조감독님, 조미연 조감독님 목소리인데 아주 리얼하게 해서, 저희 이번에 만든 음향 중에 가장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할 때마다 밖에서 진짜 누가 소리 지르는 것처럼 잘 디자인 된 거 같아요. 마츠모토는 남학생이고… 마츠모토에 대해 되게 궁금해했었어요, 배우들이. 마츠모토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계속 회자되는. 연습실에서도 이 마츠모토의 죽음이 씬에 여기 들어갔다 저기 들어갔다, 굉장히 많은 과정들이 있었는데. 그래서 조금 더 큰 극장으로 가면 앙상블을 써서 마츠모토나 (주민진 도현이 형이 이랬는데. “아! 너가 마츠모토구나~ “)교수도 좀 쓰고…(주민진 이게 대극장극 가서 배우가 오면 꼭 만나고 싶다고.) 실제는 남학생입니다. 마츠모토는. 그리고 비명소리는 간호부의 목소리.

배니싱은 명렬이로 시작하고 명렬이로 끝나잖아요. 중간에 나오는 장면까지 세 번, 우비를 쓰고 폐가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거는 의도하신 장면이신지 궁금합니다. 연출님께.

성종완 저는 그거를, 세 장면을 묶어서 생각하실 줄은 몰랐고, 천둥이 치는 오프닝과 중간은 아주 동일한 상황이고요. 마지막은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의 상황인데. 사실은… 잘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긴 해요. 근데 그것이 어떻게 뭐 전달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셋 다 뱀파이어잖아요. 첫 번째는 케이, 300년 묵은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장면이 되고, 두 번째에서는 의신이 뱀파이어가 된 장면이 되고, 마지막은 명렬이 뱀파이어가 된 장면인데. 저희가 이해를 다루면서, 이해란 주제를 다루면서, 결국에는 다 이해하긴 힘들잖아요.

그래서 상징적으로, ‘Skin Deep’이란 넘버에서 피부를 뚫고 들어가서, 그제야 우리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불가능을 전제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그냥 하나의 가정을 둔 건데. 어쨌든 완전히 그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 작품 안에서는 상징적으로 상대방이 되어서 이해해보는, 그게 큰 하나의 척추처럼 이어지는 내용이니까. 사실 이런 내용은 영혼이 막 바뀌어서 이렇게 되는 그런 장르의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계속 우리의 화두인 것 같아요. 우리가 또… (사회자를 보면서) 저 잘 이해 못하시잖아요? 제가 되어 보지 않으면. 같이 사는 부부끼리도 이해가 안 되니까 오해하고, 싸우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아마 그 장면이 그렇게 배치되었던 거 같아요.



<현장 질문>


사회자 그럼 지금까지 사전 질문을 마치구요, 현장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드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요. 연출님과 배우들께서는 여기 준비되어 있는 포스트잇 판에서 질문을 한 개씩 뽑아주셔서 답변을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재밌는 질문들이 많이 있어요. 뽑아서 질문 읽어주시고 같이 답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본인 게 아니어도 궁금하거나 내가 대답하고 싶다 이런 거 있으면 뽑아주셔도 되세요.  


성종완 먼저, 에녹에게 펜이란? (웃음)

주민진 아아 이렇게 주는 거에요?

에녹 아 저 주신 거에요?

이용규 남의 거, 남의 거 하는 거예요? 이게?

성종완 게임의 룰을 몰라가지고. (사회자 아, 게임은 아니었고)

에녹 이거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이 펜이… (웃음) …팬이 아니에요.

주민진 아~아~!

성종완 아 그래요?

에녹 그죠?

성종완 펜, 펜!

에녹 펜이…

주민진 아니 이게

에녹 어딨어?

주민진 P, E, N이야.

성종완 아 알아요. 매일 보고서가 와요.

에녹 아 진짜요? 보셨어요? 그 부끄러운 순간을? (웃음)

성종완 근데 제 작품에 이런 일이 종종 있어요. 정 모 배우라고… (웃음)

에녹 애증하죠. 네…케이와 별 다를 게 없는 펜입니다. 그 순간 정말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내가… (손가락을) 깨물어서 쓸까?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배우의 얘기를 들었어요. (성종완 아 진짜?) 펜이 없어서 갑자기 깨물고 썼다는 얘기도 들었고, 아니면 뭐 여기 있는 뭐 이런 것(소품), 이런 게 펜이라고 생각을 하고 쓸까. 그 순간 아마 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많이들 보셨을 거예요. 정말 너무 난감한 순간이었는데… 네, 어떻게든 그래도 씬을 이어가려고… 나중에 위로의 박수를 쳐 주셔서 감사를 했고. 나중에 저 펜이 저쪽에 떨어진 걸 봤을 때, 저 펜을 어떻게… (성종완 혼내고 싶었겠다.) 네, 혼내고 싶었죠.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진 전 잘 모르니까… 그래도 그…예… 유명한 사건이 돼서… 어느 분이신지… 감사합니다. (웃음)

주민진 일단 너 세 개 해봐. (웃음)

사회자 다 고르셨어요? 다 고르셨으면 앉아서 답변 해볼까요?



이용규 네, 저는 형이 줬어요.


명순이 이름의 탄생비화와, 용규명렬에게 명순이는?


명순이, 원래 얘를 명렬이라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이게 또 원래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공연장 와서 얘가 너무 쓸쓸하게 혼자 저기 앉아 있는데, 계속 앉아 있거든요. 공연 끝날 때까지. 그런데 아무도 쟤를 안 봐요. 그래서 아, 쟤한테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싶다…란 생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연습실에서 막 팔 뽑히고 막 발 뽑히고, 그래가지고 엄청 고생한 친구예요. 명렬은 의신밖에 없잖아요? 주변에 친구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친구가 있어도 마음을 안 줄 것 같은데.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약간 인형 갖고 노는 걸 좋아하는 거. 그래서 약간 제 친구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용규명렬에게 명순이는, 제 친구입니다. 제 얘기를 가장 잘 들어주고요, 아마 제 얘기를 여기 계신 분들보다 가장 많이 들어주는 것 같아요.

명순이 이름의 탄생 비화는, 어쨌든 그래서 명렬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저는 몰랐어요. 저 뼈가 여자 뼈인 줄. 저 뼈가 여자 뼈래요. 그래서 아, 그러면 명렬이라고 하면 안 되겠다. 그래서 뭐 하지? 하다가 명순이 할까? 그래서 명순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늘 저렇게 다리를 꼬고 항상 앉아 있는, 제 친구 명순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웃음)


그리고 응급 수술 이후 명렬이가 경찰에게 메스를 넘겨준 이후, 굳이 의신에게 도망치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용규 초반에는 어쨌든 그런 중간중간에 변해가는 과정이 제 안에서는 뭔가 확립이 됐었는데 그게 잘 비춰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고, 아마 이번 주 막공까지도 계속 고민하고 수정할 거 있으면 수정하고 할 것 같긴 한데. 뭔가… 자기가 생각했을 때 명렬 입장에서 처음으로 자기 의지대로 한 행동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 메스를 건네주는 거.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항상 누군가의 욕심을 채울려고만 했던, 이용만 당했던 명렬이가. 그래 이제 형은 이제 감염도 됐고, 더 이상 의사를 할 수 없고, 나는 이제 그런 형을 밀어낼 수 있는 기회는 이 때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막 어느 순간 들었을 거 같거든요. 왜냐면 내 욕심은 인정받는 거지만, 아버지한테 인정받는 게 큰 거니까. 그래서 형을 밀어내게 됐죠. 밀었어. 그리고 내려와서는, 더 확실하게 형을 쫓아내는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약간 얘 마음의 심경 변화가 엄청 180도 확 바뀐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여지를 갖고 있는 건 그거죠. 추후에 내가 이 사람한테, 이 내가 정말 존경했던 이 형, 형한테 다시 돌아갔을 때, 여지를 남겨줄 수 있는 방법? 모든 건 설계지만, 제가 생각해 놓은 설계지만, 여지를 줄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잔머리가 엄청 좋은 거죠. (에녹 배우를 바라보며) 미안해, 거기까지 해서. (에녹 어.) 저는 답변 이렇게 하겠습니다.


사회자 그럼 에녹 배우님.

에녹 저는… 많은 분들이 펜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셨네요? 근데 그건 아까 답변을 했드렸으니까~

마지막 실험 후 케이의 환청이 들리는데, 저는 가끔 “널 인정해”로 들릴 때가 있고 “너도 인정해”로도 들릴 때가 있거든요. 실제는 어떤 건지 배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에녹 “널 인정해”라는 게 원래 녹음된 파일은 맞고요. 근데 이거를 환청이 아닌… 케이가 텔레파시로 보냈다고도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근데 저희 안에서의 해석은, 그 주사에 대한 어떤 내성? 그걸로 인해서 어떤 부작용이 환청으로까지 들리게 되는 걸로 생각을 했거든요, 그 순간에. 그리고 그 환청이라는 부분들은 결국 제 안에, 제가 저에게 주는 어떤 메시지, 그 케이한테 들었더라도 저 자신이, 저 자신이 생각하는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라고도 생각을 했고요.

아 그리고  서로의 역할이 탐났던 적은 없나요? 자신이 다른 역을 만난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라는 질문을 해주셨는데.

에녹 저는 이제 연습하면서는 케이가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세상에 제가 열심히, 한 이만큼 5분 분량을 혼자 다 얘기해놓으면 혼자 “어…”, “아…”, 이걸로 혼자 시선을 다 가져가니까. 아니 이런 꿀 같은 게 어딨나! (웃음)  그 연기도 굉장히 내면 연기가 어려웠을텐데. 나중에 물어보니까,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한 어려움도 있더라고요. 근데 ‘Skin Deep’, ‘나를 마셔’ 이런 부분들은 배우라면 누구나 좀 탐낼 만한 장면이 아니었나란 생각이 들고요. 명렬은… 제가 생각해도 정말 어려운 역할이거든요. 그래서 이 역할은 우리 용규가 하는 게, (웃음) 좋은 거 같습니다.


이용규 형은요?

주민진 아 저는 기회가 된다면 명렬을 해 보고 싶습니다.

이용규, 에녹 오오~

에녹 그럼 내가 뭐가 돼.

주민진 형은 캥거루! (웃음) 아 저는 명렬 같은 역할… 명렬같은? 역할을 되게 좋아해요. 전 어떤 한 인물의 다양… 그러니까 한 인물로서 달라져 가는 걸 보여… 그러니까 가져가는 걸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걸 상상하는 것이 너무 좋아하고. 네.

성종완 알렉스였잖아요.

주민진 신~이여~

이용규 저는 극 속에서 사랑받지 못하잖아요. (주민진 왜애~?) 그래서 의신 하고 싶어요. 계속 사랑받을 수 있게. 명렬한테도 사랑받고, 케이한테도 사랑받고.

에녹 녹록치 않아~(웃음)

주민진 녹이 형이라서.

에녹 (한숨)


주민진 아 전가요? 저, 저요?

무대에서 연기하실 때, 관객들의 표정이 잘 보이세요? 맨날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걱정이 돼요.

주민진 일단 이건 배우마다 달라요. 배우마다 다른데, 같이 일을 해 보면 느낄 수 있어요. 이 분께서, 전문용어로 제 4의 벽이라고 하죠? 이게 쳐지는 분들이 계시고 그걸 열어놓고 완전히 호흡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사람마다 다 다른데, 생각보다 무대 위에서 그 인물로서 해야 될 게 너무 많다 보니까 잘 못 봐요. 어떤 표정인지 잘. 이쪽이 객석이구나, 를 인지하는 시점은 있을지언정 이분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지는 너무 어렵지 않나? 그걸 체크하기가? 무대 위에서도 할 게 너무 많은데. 네, 그렇습니다.

에녹 펜 사건이 있었을 때는… (주민진 인식이 다 됐어요?) 예, 정확히 다 보이더라고요. (웃음)

주민진 마음껏 하세요. 저는 공연 볼 때 이러고 봐요. (입 벌리고 보는 표정 재연) 입 벌리고. 푹 빠지면 흐어… 이러고 보기 때문에. 네.

성종완 저는 민진배우님이 하나 뽑아주셨는데, 천장의 나뭇가지랑 같이 있는 조명은 무엇을 표현하는 건가요?라고 질문해주셨어요.


주민진 너무 멋있죠?

성종완 저희 무대 전체 컨셉은, ‘이질적인 것들로 조화를 이뤄보자’였어요. 인간이 만든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또 자연의 요소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것들이 크게 우리 작품의 주제랑 통하고 있어서.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겠죠. 슬픈 결과가 오지 않았겠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했는데.

저 나뭇가지들은 사실 혈관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이 창문 뒤로 나오면, 그 나뭇가지도 아주 혈관처럼 잘 보일 수 있는. 이 피에 대한 양면성도 좀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피가 누군가에겐 생명이지만 누군가에겐 죽음이고, 그런 어떤 인간의 양면성, 또 모순된 어떤 인간의 모습들, 명렬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또 뭐 다른 캐릭터들도. 모순된 모습들을 나타내는. 그리고 곳곳에 피가 묻어 있어요. 이런 데도 붉게 되어 있고. 저 빨간 꽃이 원래는 하얀색 꽃이었겠죠. 저거는 이제 영화 <스토커>의 한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서. 하얀색 꽃이 피가 탁 튀면서 빨갛게 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디자이너한테 요구를 했고. 곳곳에도 잘 보이지 않지만 피의 자국들이 있어요. 핏자국들이 곳곳에. 그것은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생명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죽음이면서… 그런 요소들로 되어있습니다. 저 조명도 사실은 저 디자인은 병원이나 실험실에 있을 법한 조명 위에 자연의 요소로, 이질적인 것으로 조화를 이뤄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더 뽑으신 분 계실까요? 다 답 해주셨어요? 그럼 저희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마지막 인사하고 마무리하는 걸로 할게요. 용규배우님부터 순서대로.

이용규 정말 긴 시간 동안 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저희가 많은 것을 연습실부터 지금도 계속 꾸준히 배우마다 다 생각하고 그걸 무대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근데 그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공까지 노력해서 더 완성된 공연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집에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에녹 저희가 처음 시작했을 때 좀 많이 힘들었거든요. 무대에 직접 이렇게 올라와서 객석을 바라봤을 때, 채워져 있지 않은 자리들을 보면서 힘들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가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객석을 가득 메워 주신 관객 분들을 봤을 때, 저희가 정말 힘든 어떤 날이었는데 그때 저절로 힘이 난다, 라는 얘기들을 서로 했던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더 뭔가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게 되고. 제가 늘상 하는 말이기도 한데, 작품은 관객 분들을 통해서 완성이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찾아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이 작품이 끝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민진 어쨌든 인생은 한 번 사는 거니까 재밌게 사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요, 주민진이가요. 한 번이잖아요. 근데 여러분들은 여기에 와 주셨고, 네… 이거는 이제 절대 바뀔 수가 없는 거예요. 2017년도에, 12월 5일이죠? 5일에, 이 시간에 우리가 여기 함께 있었다, 라는 거는 도저히 바꿀래야 바꿀 수가 없는. 이 순간을 다 다르게 기억하겠죠. 여기 계신 수만큼. 하지만 우린 분명히 여기 함께 있었고, 그 사실에 대해서 진심으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인생이 왔어요. 이렇게 많은 인생이. 이게 진짜… 너무 대단한 거예요. 진짜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요, 남은 공연으로써 정말 열심히 해서 보답할게요. 네. 아플 시간도 없이, 지칠 시간도 없이 여러분들, 여기 와 주신 여러분들을 위해서 진짜 사생활이고 뭐고 없이 그냥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종완 공연 올려놓고 굉장히 괴로웠어요. 그간에…지금까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좀 보내고 있는데, 굉장히 열심히 했거든요, 사실은. 거의 하루 서너 시간 자고. 뭐 밤마다 배우들과 문자 주고받으면서.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사실은 이제 평가가 그렇게 좋지 않아가지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좀 슬프더라고요. 되게 많은 사람이 노력한 결과에, 좀 솜씨가 부족했나, 왜 이렇게 나는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라는 괴로움 때문에 너무 자괴감도 들고. 산에 들어가고 싶고 그렇더라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명렬의 가사 중에 있잖아요. ‘나는 지나쳤고 그는 마주쳤어.’ 그러니까 누군가는 그냥 지나쳐서 다시 안 찾아주신 분들도 계시지만 또 그 분들도 당연히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 근데 여러분도 마주쳐 주셔서… 또 손 내밀어 주시고, 또 관계를 맺어 주시고, 함께… 오늘 순간이란 단어가 굉장히 많았는데,  순간들을 만들어 주시고, 또 의신이를 얘기해 주시고, 케이를 얘기해 주시고, 또 명렬이를 얘기해 주시고, 그러면서 사실은 또 하나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걸 목격하면서 굉장히 감동스럽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또 이렇게 가득 메워 주신 여러분들이. 사실은 제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관객들의 어떤 외로움과, 뭐랄까… 관계에서 이해받고 싶은 이 감성을 힐링해주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제가 이제 관객들의 어떤 열정과 참여에 의해서 굉장히 힐링되는 순간이 됐어요. 어쨌든 제가 전해 듣기로는 배니싱이 잘 된다면 또 관객들을 찾아갈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르겠는데. 그 때가 되었을 때는 좀 더, 여러분들이 더 마주치고, 더 손 내밀고, 더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공연으로 되어지기를 기대하고. 저도 민진씨가 얘기했던 것처럼 더 공부하고 더 해서 더 열심히 또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재은 전체적으로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 불가능함을 말하고 있어요.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소용없다, 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걸 향한 지향이나 노력의 순간들이, 다소 삐걱대더라도 그런 순간들 자체가 의미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케이가 죽지 못하고 길고 지겨운 삶을 살며 기다린 건 결국, 어떤 의미 있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미 있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겠죠. 케이에게는 그것이 이해의 순간이었고, 케이와 의신은 분명 이해의 가능성을 지닌 순간, 충분히 아름다운 순간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극 중 순간들이, 비록 삐걱대더라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고 이 모든 순간을 지켜본 명렬의 가사, ‘반짝이며 부서지는 순간의 조각들’에 이런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영원한 삶을 생각하면, 사람이 만일 영원을 살더라도 결국 어떤 의미 있는 순간이 없다면 허무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반대로, 사람에게 행복한 한 순간이 있으면, 그런 순간은 머릿속에서 영원히 남아 반복되는데, 그것이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가장 멋진 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인지하는 어떤 순간의 끝없는 확장이 영원을 넘어서는 순간이 아닐까요? 그래서 둘의 죽음은 행복한 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이것으로 저희 배니싱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겠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