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오세혁 연출 추가 질답
자료1 17. 12.

① 초연과 재연 모두 관람했는데요, 연출님의 생각이나 느낌대로 배우님들이 꼭 표현해주셨으면 하는 장면이 있다면 어느 부분인가요? 또 연출님께서 이 극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쯔베레프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의 보칼리제 허밍과, 옐레나 독백이 끝나고 부르는 비가가 가장 애착이 갑니다. ‘곡’을 넘어 ‘곡소리’로 들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슬픔이 너무 극심했을 때 나오는, 울음을 넘어서는 슬픔 같은 느낌을.



② 피아노, 6중주 무대 등 변화가 많은데요, 연으로 돌아오면서 가장 변화 혹은 무게감을 주고 싶었던 것이 있으셨는지요.


역시 음악이었습니다. 음악 감독님이 6중주의 꿈이 있으셨어요. 두 명의, 서로 다른 개성의 피아니스트에 대한 생각도. 실은 엄청난 꿈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언젠가 꼭.



③ 공연 중간중간 무대 뒤에 양쪽에서 나타나 하나의 선처럼 보이는 조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조명 감독님의 아이디어입니다. 라흐의 마음이 하늘에 있는 누나에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디자인 하셨다고 합니다.



④ 모든 캐릭터 하나하나 소중하시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역할과 이 극을 보면서 이런 생각, 관점으로 봐줬으면 하는 점이 있으신가요?


쯔베레프 선생님이 갈수록 사랑스러워집니다. 우리 모두는 대부분 천재가 아니죠, 저도 그렇고. 우리는 언제나 꿈과 열등감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남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어색해하죠. 쯔베레프 선생님이 가장 인간적인 분인 것 같아요.



⑤ 앵콜로 오면서 가사나 BGM이 추가되거나 수정된 부분이 있는데, 그중에서 이건 정말 바꾸고 싶었다고 생각하신 부분은 어떤 것인지, 또 왜 바꾸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상당히 작은 부분이긴 한데, 교향곡 1번이 끝나고 달 박사가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꼭 연주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그래야 편지를 더 잘 읽을 것 같아서. 그리고 쯔베레프 선생님이 피아니스트에게 레슨 시킬 때, 맨 마지막 곡은 피아니스트가 꼭 치고 싶은 곡들을 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⑥ 초연과 비교해서 이번 앵콜 공연에서 달라진 부분은 어떤 것이 있나요? 그리고 초연과 달리 장면의 사이사이에 넘버의 멜로디들이 간략하게 연주되는 것 같았는데요. 예를 들어 이미 쓰인 넘버의 멜로디가 다시 연주되거나 앞으로 부를 넘버들의 멜로디가 잠깐 나오는 식으로요. 이게 어떤 징조 같기도 하고, 라흐마니노프의 현재 심경을 반영하는 것 같았어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음악이 하나의 배우처럼 여겨지면 좋겠다는 얘기를 음악 감독님과 늘 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말하는 순간’, ‘음악이 숨을 쉬는 순간’들을 계속 찾아가는 중입니다. 쉽게는 안 되겠지만 길게 길게 찾아나가 보려고 합니다.



⑦ 다른 극들도 그렇지만 라흐마니노프도 다관람 관객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연출님이 생각하시는, 관객들이 자꾸 찾아오게 되는 비결이라면요.


저도 자주 찾아오는 편인데요, 저는 마지막 달 박사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잘 될 거야, 잘 해낼 거야 넌’ 이상하게 이 말만 들으면 용기가 생기네요. 물론 각자의 이유로 많이들 오시겠죠!



⑧ 라흐마니노프 삼연에서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어떤 변화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변화라기보다는 좀 더 깊어지는 과정을 가지려고 하는데요, 아마 저를 비롯한 창작진과, 배우들이 그때가 왔을 때 얼마나 더 깊어진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서 깊어질 수 있는 지점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가진 만큼 표현될 수 있는 법이니까요. 조금이라도 깊어지려고 열심히 공부중입니다.



⑨ 라흐마니노프는 왜 엘레나를 위해 꼭 ‘교향곡’을 들려주고자 했던 건가요? 라흐마니노프에게 교향곡은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 나아가서 예술을 우리가 왜 만들까를 얘기해 봤어요. 결국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스런 마음’으로 만들 때 가장 빛나는 것들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라흐마니노프가 세상에 점점 알려지면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연주했던 최초의 순간’이 가장 빛나지 않았을까요. 라흐마니노프에게 교향곡이 ’자신의 성취’가 아닌 ‘사랑하는 이를 위한 선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⑩ 라흐마니노프라는 작품을 이렇게 멋지게 연출해 주셔서 감사해요. 연출가님께 달 박사님과 라흐마니노프는 어떠한 의미인가요?


실패하고 은둔 중인 라흐마니노프가 저랑 좀 비슷합니다. 제가 작년에 라흐마니노프 연출을 맡기 전에 좀 그랬거든요. 근데 창작진도 배우들도 다들 라흐마니노프 같았던 시절이 있었더라고요. 달 박사님은 아마도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하러 온 의사’보다 ‘라흐마니노프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러 온 관객’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⑪ 라흐마니노프 배우들과 함께 하면서 어떤 때 제일 기분이 좋았는지 궁금합니다.


분명 배우들 연습시간이 아닌데도, 시간이 생겼다고 연습실에 와서 머무르다 갈 때가 있어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머물다갑니다. 그게 이상하게 감동이더라고요. 시간 있으면 더 좋은데도 갈 수 있는데 왜 우리 연습실이었을까.



⑫ 연출님께도 달 박사처럼 곁에서 응원해주는 존재가 있으세요?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극단 걸판의 대표, 그리고 애인 배모 씨! 그리고, 정말로 훌륭한 PD 분들이 계십니다. 세 분 정도 계신데 언제나 갈 길에 대한 상담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하면서는 음악감독님이. 무조건 다 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하시는 분.



⑬ 이번에 쯔베레프가 악수를 청하려는 것 같은 모션이 추가되었는데 어떤 의미에서 추가하게 되셨나요?


달 박사들이 대기실에서 말하길, 라흐가 너무 슬퍼하니까 꼭 악수를 해주고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넣어보자고 했습니다.



⑭ 연출님이 전하고 싶었던 순간의 진실, 진실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전 매번 바뀌는 것 같아요.


저도 매번 바뀝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의 어깨에 손을 대 주는 순간은, 매번 진실된 마음이 느껴집니다.



⑮ 마주본 두 방이라든지, 중간의 묘비나 옷, 작은 소파, 천장에 붙은 악보 등 공간구성이나 환경배치 등도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특별히 신경써서 배치한 부분은 어디인가요?


김대한 무대 디자이너하고 의견을 많이 나눴죠. 실제의 방과 마음의 방이 구분 없이 모호하게 섞여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이너님은 천장의 악보를 가장 신경 쓰셨습니다. 어려운 작업이죠.



⑯ 나중에 다시 재재연 또는 라흐콘을 할 생각이 있으신지요?


컴퍼니와 긴밀하게 논의를 해 보겠습니다.



⑰ 달 박사님이 비올라에 편지를 끼워두고 가는 걸 라흐마니노프가 꺼내서 읽어보는 장면을 넣지 않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앵콜 공연부터 보고 있어서 그런데 혹시 초연에서는 라흐마니노프가 꺼내서 읽었나요?


읽지는 않았습니다. 달 박사가 마지막 가는 길에, 빈 방만 덩그러니 있으면 라흐마니노프가 아주 슬플 것 같았습니다. 달 박사님들이 의견을 내셨어요. 자신의 비올라와 편지를 마지막 선물로 주고 싶다고. 참 훌륭한 배우들입니다.



⑱ 라흐마니노프를 볼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는 순간이 가끔씩 다르긴 한데요, 저는 달 박사가 “음악도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나요?”라고 묻고 나서 옐레나 멜로디가 살짝 연주될 때 여러 감정이 교차되더라고요. 직접 연출하신 작품이긴 하지만 매순간 다르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그 장면 얘기가 나왔으니 저도. 혹시 느끼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음악도 그렇게 시작했나요?” 이후에 들려지는 엘라나 연주가 영 점 몇 초씩 계속 다릅니다. 그건 뭐랄까. 달 박사의 대사를 듣고, 저 어렴풋한 곳에서 누나의 기억이 살짝 떠오르는 순간인데, 이건 타이밍을 정하지 않고, ‘그 순간의 호흡’으로 가보자고 했어요, 이건 말로 설명이 안 되는데, 아무튼, '마음이 밀려오는 타이밍’이 그때그때 다를 듯하여!



⑲ 달 박사가 미국 유학 당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듣고 위로받았다고 하는 그 음악은 무엇인가요? 실제로 그 시기에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서 연주했던 곡인가요? 달 박사가 허밍으로 흥얼거리는 곡이라면 이 곡의 원곡은 혹시 무엇인가요?


달 박사가 미국으로 유학간 적은 있지만, 라흐마니노프를 만났을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우리는 분명 들었을 것이라고 상상했어요. 달 박사도 미국 유학시절 분명 힘든 시절이 있었을 것인데, 어떤 식으로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힘을 주었을 것이라고, 허밍에 나오는 곡은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음악 감독님 얘기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작곡가들은 보통 틈날 때마다 즉흥으로 이렇게 저렇게 연주를 해보고 흥얼거리고 하는데, 어느 순간 그 멜로디가 다시 찾아올 때가 있답니다. 어쩌면 라흐마니노프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멜로디가 자신의 마음속에 이렇게 저렇게 숨어있지 않았을까요. 호텔에서 그 멜로디 중 하나를 즉흥으로 연주했는데, 그 멜로디가 달박사에 의해 다시 찾아온 것이라면? 저희들의 즐거운 상상입니다.



⑳ 차이코프스키가 초연에 비해 여성성이 많이 더해진 것 같습니다. 연출님의 디렉션이 따로 있었던 건가요?


캐릭터 표현은 늘 배우를 믿는 편입니다. 다만, 차이코프스키에 관한 자료들을 서로 많이 공유했죠. 이런 애기를 한 적은 있어요. ‘차이코프스키 선생님은, 뭔가 상당히 부드럽고 고운 분이었을 것 같다’고. 아마 이런 이야기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㉑ 저는 라흐마니노프의 조명 효과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달 박사님이 처음 등장해서 라흐마니노프의 집으로 가는 길의 네모 조명은 피아노를 나타낸 건가요? 혹시 가장 신경 쓰신 조명 효과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이주원 디자이너님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언제나 연습과정을 쓰윽 지켜보시다가 기가 막힌 디자인을 제안하시죠. 달 박사님이 라흐마니노프의 집으로 가는 조명은 원래는 길 조명이었는데, 자꾸 피아노처럼 보여서, 주원 감독님과 얘기해서 그 쪽으로 더 살려보았습니다. 가장 신경 썼던 조명은,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의 어깨에 손을 댔을 때, 저 멀리 어둠속을 지나가는 한 줄기 선의 조명입니다, 누나에게 다가가는 마음 같은 조명.



㉒ ‘이젠 더 이상’ 넘버에서 몇 마디가 추가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초연 때도 이만큼의 길이였는데, 사정상 압축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 음악 감독님께서, 꼭 다 불러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라흐마니노프의 심경이 숨을 못 쉴 정도까지 치솟고 답답하고 애통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동의가 되어서 한 번 살려보았습니다.



㉓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님이 교감을 이룬 순간, 무대 뒤편 양쪽에서 조명이 만나 긴 선을 이룹니다. 그 선이 어둑어둑한 무대 뒤편에서 강렬하게 이어질 때 마음이 굉장히 뭉클해지는데, 그 장면은 제가 생각한 것처럼 두 명의 교감을 의도한 것이 맞나요?


그렇습니다! 라흐마니노프와 달의 교감, 라흐마니노프와 누나의 교감.



㉔ 초연의 동선과 다르게 앵콜 공연의 달 박사님 퇴장씬은 조금 아쉬움을 불러일으킵니다. 관객들 대부분에게 달 박사님이 아예 사라지시거든요. 공연장 구조상 선택한 방법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했어요.


의도는 아닙니다. 구조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㉕ ‘라흐마니노프는 모든 페어가 사랑이다’라는 말을 관객들은 굉장히 많이 합니다. 연출님께서 느끼시는 고흐페어(박유덕/김경수)만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어떤 장면에서만큼은 고흐페어다! 또는 케미는 둘이 최고다 등등.


어떤 페어건 서로 간에 약간의 긴장감은 있게 마련이죠. 서로의 마음속을 완전히 다 알지는 못하니까. 그런 긴장감을 저는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고흐페어는 이상하게 그런 긴장감이 안 느껴지더라고요. 서로를 완전히 알기 때문에 다 믿은 채로 모든 것을 서로에게 던지는 느낌이랄까? 서로가 어떤 에너지를 던져도 그대로 다 받아줄 수 있는 느낌입니다. 이런 '온몸의 느낌’도 저는 참 좋아합니다. 



㉖ 앵콜 공연이긴 하지만 지난 시즌 공연과 비교해서 가사가 추가된 부분도 있고 앵콜 공연에 임하시는 마음가짐도 새로우실 것 같아요. 혹시 지난 공연과 차이를 두려고 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차이라기보다는,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연습할 때마다 (이런 말은 이상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연습을 계속 했습니다. 이 장면을 우리가 애초에 왜 만들었는지, 이 대사는 왜 치기 시작했는지. 하지만 공연은 매번 무대 위에서 반복되는 것이기에 쉽진 않은 것 같아요. 10년 후, 20년 후까지도 익숙해지지 않기를!



㉗ 라흐마니노프라는 작품은 오세혁 연출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도 은둔하던 라흐마니노프 같은 시절이 있었어요. 이 작품 덕분에 다시 햇볕을!



㉘ 라흐마니노프라는 작품이 다시 올라올 때 가장 바꾸고 싶은 부분이나 시도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으신가요?


이런 게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3주년이나 5주년이 되면,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가 서로의 역할을 바꿔가면서 출연해 봐도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저 개인만의 생각입니다. 서로의 역할을 더 잘 알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라흐와 정라흐, 박달과 안달. 물론 저 개인만의 생각이라 이게 아닌 것 같으면 바로 접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