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303 라흐마니노프 - 관객과의 대화
자료1 17. 12.

CAST
박유덕|라흐마니노프   김경수|니콜라이 달

with 오세혁 연출






https://www.youtube.com/watch?v=A0FbxKYGnBw




① 오세혁 연출님께. ‘안녕, 라흐’를 부르고 문이 아닌 객석으로 나가는데요, 객석으로 나가는 동선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달 박사가 밖에서 들어와서 나갈 때도 같은 동선으로 퇴장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물론 무대에도 문이 있지만, 두 달 박사 배우 분들에게 여쭤봤을 때 관객석으로 퇴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또 다른 라흐를 만나러 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이런 의미를 처음부터 부여했다기보다는 만들면서, 다른 사람들도 치료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무대 디자이너님께 죄송했어요. 애써서 문을 만들어주셨는데. 그래도 김경수 배우님께서 문 위에 메모도 붙여놓자는 아이디어를 주셔서 문을 잘 꾸밀 수 있었어요.


(김경수 배우) 저는 이 부분이 한편으로는 비약일수도 있지만, 라흐마니노프가 등을 지고 있으니까 그게 달 박사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 아니었을까, 해서 서로 뒷모습을 바라보며 떠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② 김경수 배우님께. 초연 후 앵콜 공연을 준비하면서 표현 방법이 달라진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요? 앵콜 공연에 와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제가 라흐마니노프 팀에게 너무 죄송하게도 잠시 다른 공연(광염소나타) 때문에, 이번에 공연을 많이 못 했어요. 초연에 비해 새로운 표현법과 재해석을 통해서 공연을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시도를 하고 있고, 찾아가고 있는 과정 같아서 정확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지만 쯔베레프 교수가 라흐마니노프와 악수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했던 생각이 들었고, 연습에서 시도를 했어요. 정동화 배우가 내 준 아이디어였는데, 저희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오세혁 연출) 여러 장면에서 악수를 언제 해야 할까 많이 시도했었어요. 관객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쯔베레프가 살아있을 때 악수를 건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 장면에서 악수를 건넨다는 건 달 박사가 생각하기에 그랬을 수 있고, 라흐마니노프의 상상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저희 배우들 사이에서도 악수 타이밍에 대해서 굉장히 치열한 토론을 했어요. 쯔베레프가 라흐마니노프를 테스트 한 후에 “나쁘지 않았어. 내일도 이 시간에 오도록.”이라고 한 직후에 악수를 청하면 어떨까, 싶었지만 또 너무 쉬워 보였고요. 달 박사가 “~라고 말씀하셨을 거예요.”라고 말한 직후에 라흐마니노프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결국 그 부분에서 다가가지 않고 악수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③ 박유덕 배우님께. 라흐마니노프의 방문이 열려있다는 것이 꽤나 의아했습니다. 교향곡 1번의 실패 이후에 폐인 생활을 하면서 그는 더욱더 문을 굳게 걸어 잠갔을 것 같아서요. 라흐마니노프도 자신을 도울 타인의 방문을 기다렸던 것일까요? 배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도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말을 굉장히 좋아해요, 제가 많이 그랬거든요. 저도 많이 힘들 때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말이 와 닿았어요. 라흐마니노프도 그랬을 것 같아요.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런데 제가 마음의 문을 닫는다고 해서 닫히는 걸까요? 제가 해보니까 그렇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정말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다고, 자신이 철옹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을 열면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제 스스로 닫혀 있다는 생각이나 말을 안 해요. 닫혀 있다고 생각 안 해요. 공연에서도 실패한 거지 닫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실패했어. 왜 실패했을까? 아냐. 난 실패하지 않았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만 몰두하고 있어요. 저 스스로에게 빠져 있다고 생각해요.


(김경수 배우) 타인들의 눈이 그렇겠죠.


나는 정말 멀쩡한데 실로티 형이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냐, 너는 아파’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냐, 난 아프지 않아. 전 그걸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괜찮지 않음을 괜찮다고 표현 하고 있어요.


(김경수 배우) 저는 무대 위에 들어왔을 때, 외로움의 공기가 너무 좋고, 제가 할 일이 생긴 게 너무 좋아요.



④ 오세혁 연출님께. 커튼콜에서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가 무대 뒤로 올라갈 때, 초연과 조명이 달라졌는데, 다른 이유가 있나요?


초연 무대에서도 굉장히 해 보고 싶었어요. 극장의 여건이 맞지 않아서 초연에서는 할 수 없었어요. 무대가 깊고 길면, 오랫동안 두 배우를 함께 무대 뒤로 걷게 하고 싶었어요. 오랫동안 걷게 하고 싶은 느낌이 있어서 조명감독님께 부탁드려서 조명을 좀 바꿨어요. 사실은 무대 뒤로 걸어가면서 머무르는 장면이 더 있었고, 바라보면서 어두워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무대 여건상 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나중에 꼭 해보고 싶어요. 둘이 오랫동안 걸어가고 지평선 너머로 걸어가는 느낌을 주고 싶습니다. 저희가 사실 조명 세팅 전에 많이 고심하고, 연습하던 부분 중에 한 장면이에요.



⑤ 오세혁 연출님께. 유학 간 달 박사님께 바닥 조명이 네모가 여러 개인데 끝 부분에 조명이 몇 개씩 사라지는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바닥의 조명은 원래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피아노 건반처럼 보이는 걸 발견했어요. 조명 감독님께 말씀을 드렸을 때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작업하다 보면 예상하면서 하는 것도 있고, 하다가 만들어지는 부분들도 있어요. 원래 의도는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의 방으로 가는 길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피아노 건반처럼 보이는 부분을 공연 직전에 깨닫고, 조명 감독님께 피아노 건반처럼 사용해도 괜찮겠냐고 여쭤봤을 때 조명감독님이 흔쾌히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질문해주신 분과 관객 분들께 솔직히 말씀드리면, 끝부분에서 조명이 사라지는 건 제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에요. 하지만 다음에 공연이 다시 올라온다면,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에 있는 피아노로 활용하고 싶어요.



⑥ 김경수 배우님께. 초반에 ‘세르게이, 천천히 그 소리를 듣고 와요’를 극 초반에 하다가 후반부에는 ‘세르게이, 천천히 그 소리를 듣고 오렴’으로 바꾸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공연을 하면서 찾게 된 부분 같아요. 극 안에서 제가 이 사람(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을 읽어내고,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잖아요. 그건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겠죠. 어느 순간, 내가 이 사람을 대하는 표현이나 화법들이 너무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번 ‘허물을 벗어볼까?’ 이 중요한 시점에서, 지금 라흐마니노프는 점점 어려지고 있는데, 그 어린 친구에게 딱딱한, 거부감이 드는 말투는 아닐까, 해서 형 같은 마음으로 말을 걸어볼까? 그러면 마음이 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극 안에서  라흐마니노프를 ‘세르게이’ 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해서, 세르게이라고 불러보고 싶었어요.


(오세혁 연출) 제가 굉장히 놀란 게, 제가 예전에 공부를 할 때 러시아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름을 다 불렀다가 애칭을 불렀다가 하는데, 가깝거나 마음으로 친한 친구가 아니면 성을 부르지, 절대 이름을 부르지 않는대요. 그래서 경수 배우님께서는 그렇게 마음으로 가까운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으신 거잖아요. 그 부분이 굉장히 와 닿았어요. 또 하나는 박유덕 배우님이 ‘니콜라이’라고 하시는 부분. 스승 니콜라이 쯔베레프와 니콜라이 달이 같은 이름이라는 것을 아시고, ‘니콜라이 달입니다.’ 라는 대사를 들으면서 '니콜라이, 니콜라이’라고 속삭이시잖아요. 본인이 쯔베레프 선생님을 아쉽게 떠나보냈는데, 우연의 일치로 니콜라이 달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점에서, 박유덕 배우님이 그 부분을 많이 생각하신 것 같아요. 원래 제가 지난 초연 공연 이후에 여러 장면을 추가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마지막 공연 때 생각을 바꿨어요. 왜냐하면 공연에서 머무는 순간들이 많은데,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두 배우의 생각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들이 보이니까요. 제가 사실 어제 ‘어쩌면 해피엔딩’이라는 공연을 봤는데, 놀라웠던 것은 2, 3 분 사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두 배우의 감정상태가 계속해서 바뀌는 게 보이는 거예요. 노크를 하고 떠났을 뿐인데. 문을 열었을 뿐인데. 감정 상태가 계속해서 변하는데,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후반부로 갈수록 제게 물밀듯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래서 만약에 라흐마니노프가 재연, 삼연을 거쳐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면 김경수 배우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이와 침묵 속에서 생각이 흘러가는 것들을 얼마만큼 더 확장시키느냐, 찾아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⑦ 박유덕 배우님께. 배우님의 라흐마니노프는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은 정말 저 밑까지 무너질 것 같은데요. 정말 웃으실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배우님이 생각하시는 라흐마니노프는 바깥으로 한 걸음 내딛은 후에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 것 같나요?


한 번 무너지고 다시 일어섰을 때는 웃게 되고, 열리게 되고 조심성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어서, 내 음악을 당신들에게 들려줄게. 이렇게 만든 음악이니까 당신들은 보기만 해!’라는 걸 보여줬다면, 달 박사와 함께한 시간 이후로는 ‘제가 준비한 곡입니다. 여러분과 이 곡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잘 들어주십시오.’라는 마음을 가졌을 것 같아요. 자만심이 없었을 것 같아요. 조심성이라기보다는 한 단계 앞으로 나가지만 한 단계 더 깊어진 느낌? 더 성숙해진 느낌일 것 같아요. 과거의 실수들에 있어서 ‘그때처럼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을 것 같고.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을 것 같아요. 제가 ‘안녕, 라흐’ 때 2층 관객석을 쭉 훑어봐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분명 제게 말하고 있었거든요. ‘넌 충분히 잘 하고 있어.’ 그리고 ‘너의 음악은 안 좋아. 쓰레기야.’ 그것도 저에겐 충분한 거름이 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듣고 싶은 말만 들었던 거죠. ‘넌 이걸 해야 해. 해야만 해.’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남들은 바뀌지 않아요. 제가 바뀐 거죠. 제가 보는 시선이 바뀐 거죠. 바람은 똑같이 불고, 새는 똑같이 날아다니고, 눈은 여전히 흩날리는데 제가 보는 시선이 변한 거예요. 저는 많이 웃을 것 같아요. 예전의 웃음과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⑧ 관객과의 대화 소감


오세혁 연출: 제가 연출했던, 만들었던 작품들을 모두 사랑하고 아끼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좀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마음이 많이 지쳤을 때, 힘들어서 작업을 그만두려고 했던 적이 있었을 때 이 작업을 하면서 많이 극복하게 됐어요. 눈을 감기 전 제가 했던 작품을 떠올릴 때, 라흐마니노프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아요. 제가 이 작품을 제일 좋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제가 정말 힘들었을 때 이 작품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관객 분들이 여기에 여러가지 이유로 오실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각각의 생활이 있으실 텐데 분명히 작품에서 다 다른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저는 관객 분들이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한 분, 두 분이라도 계속해서 찾아주신다면, 계속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식상한 말이지만 이 말은 정말 제 진심이에요, 매년 배우님들도 오랫동안 이 작품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50세, 60세가 넘어서도 계속 함께요. 


박유덕 배우: 우선 저희 6개월 만에 앵콜 공연으로 돌아왔는데, 많은 분들이 잊지 않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다시 찾아와주시고,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해요. 많은 걸 보여드리고 싶고, 정리되지 않았던 제 생각들을 잘 전달하려고 했지만 모든 걸 전달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김경수 배우: 앵콜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제 회차를 못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워요. 더블캐스팅이었던 정동화 배우에게 너무 미안하고요. 이 공연이 다음 주가 마지막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믿을 수가 없지만요. 막공이 오는 그날까지 공연에 대한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께 밝은 웃음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늦은 이 시간까지 찾아주신 관객여러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