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11 라흐마니노프 - 관객과의 대화
자료1 17. 12.

CAST

안재영|라흐마니노프   김경수|니콜라이 달

with 윤상원 조연출






https://www.youtube.com/watch?v=OJ4DPvlGMak




① 오세혁 연출님께. 무대 위에 있는 묘비, 의자 등 오브제들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무대 위에는 크게 세 개의 방이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방, 달 박사의 방, 그리고 한가운데에 있는 넓은 공간, 이것은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속입니다. 그를 만들었던 기억과, 추억과, 트라우마가 모조리 머물러 있는 방이죠. 쯔베레프 선생님의 묘비, 아버지의 군화,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가구들, 교향곡 1번의 악평이 실렸던 신문, 누나 옐레나가 앉았던 소파 등등,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의 마음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습니다. 현실의 방과 마음의 방이 경계 없이 한 공간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② 김경수 배우님께. 라흐마니노프와의 첫 만남에서 왼손으로 박수를 청했다가 오른손으로 바꾸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공연 중에도 차 마실 때, 시계를 볼 때, 진료기록을 작성할 때 계속 왼손을 사용하시더라고요. 실제로도 왼손잡이신가요? 아니라면 그렇게 설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원래 양손잡이에요. 특히 운동을 할 때 왼손, 왼발을 많이 사용해요. 사실 니콜라이 달이 왼손잡이였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왼손을 굳이 사용하는 건 습관적인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 제가, 이렇게 오른손을 사용을 하면요, 이렇게 등을 많이 지게 되더라고요. 방의 위치에서 라흐마니노프와 대화를 하는데, 뭔가 체크도 하고 싶은데 매번 이렇게 하는 모습이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왼손잡이가 많잖아요, 특히 외국 분들은.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③ 안재영 배우님께. 마지막 달 박사가 떠나고 복도의 문을 열어보고 첫 만남 때처럼 노크도 해보는데, 이건 단순히 달 박사를 향한 그리움, 허전함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라흐마니노프가 발을 내딛는 느낌이 들어요. 배우님이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끝을 보면 처음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 1번으로 끝이 났을 때, 다시 시작하게 해준 게 달 박사라고 생각해요.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고 떠나는 동시에, 떠남으로써 처음을 생각한 거죠. 그렇게 듣기도 싫었던 노크 소리가 듣고 싶었던 것. 문을 열면 달 박사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달 박사의 ‘당신은 이미 사랑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사랑받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지 안 들었을지는 여러분의 열린 해석에 달린 거지만, 제 생각으로는 라흐마니노프는 달 박사가 그 말을 하고 떠났을 때도 신경쇠약이 치료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곡을 쓰고 달 박사를 만남과 동시에 치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곡을 헌정함으로써. 마지막 장면의 그 노크 소리는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느낌이 맞습니다. 내딛을 뿐이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완치가 아니라.



④ 오세혁 연출님께. 라흐마니노프를 달 박사가 치료했다는 한 줄의 기록을 90분간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면서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표현하고자 하셨고, 또 그를 위해 무엇을 참고하셨나요?


네, 정말 한 줄이었습니다. ‘당신은 새로운 곡을 쓸 것이고, 새로운 곡을 쓰면 관객들은 당신을 사랑해 줄 것입니다.’ 이 한마디를 통해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했다는 기록. ‘정말 그 한마디로 가능했다는 말인가? 설마? 우리가 모르는 특수한 치료가 있었겠지…’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정신 의학과 심리 치료에 관한 책과 자료도 많이 읽었죠.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핵심은 한 가지더라고요. 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그런 한마디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있나?’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한마디. 내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말, 괜찮다는 말. 실수해도 된다는 말, 네가 일어서서 걸어갈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 어찌 보면 상당히 간지러운 말들인데 언제부터 이 말들을 간지럽다고 느끼기 시작했을까요. 사실은 정말 아름다운 말들인데. 그래서 정말 간지럽지만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말들, 아름다운 말들로 나를 치료해보고자 생각했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치유 받는 분들은 저이기도하고, 배우님들이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분들이기도 하고, 관객 분들이기도 할 것 같아요. 앞으로 계속 우리의 귓가에 아름다운 말들이 들려오기를 희망합니다.


(안재영 배우) 실제로 저희 배우들도 끝나고, 오늘 행복했지 우리, 그러면서 집에 가요. 연출님께서도 보면서 자기가 만든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항상 말씀하시고요. 그런 감정들이 관객 분들한테도 온전히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⑤ 달 박사와 라흐마니노프가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로 시작하게 되는데, 치료 후에는 서로의 관계의 정의하는 데 있어 달 박사와 라흐마니노프 각각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경수 배우) 결국 이 질문은 그 이후에 어떻게, 어떤 관계가 되었느냐는 질문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단 저도 치료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까 신경쇠약이 완치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듯이, 저도 이 사람을 이겨내게 만들었어,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다 견뎌내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꿈을 이뤘다는 식으로 퇴장하지 않아요. 저희가 편지의 형식을 많이 빌리죠. 저는 프로이트에게, 그리고 실로티에게. 각자의 대상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저는 라흐마니노프에게, 라흐마니노프는 달에게. 이후에 자주 만나지는 않았겠지만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 하고. 그런데 완치가 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치료가 다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스스로 잘 이겨 낼 거라고 믿고 응원해주는, 그런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그의 공연이 있을 때 저를 또 초대해주기도 했고요.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 소박하게 생각했어요.


(안재영 배우) 어떻게 보면 되게 심플한 이야기예요. 곡을 쓰지 못했던 어떤 음악가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곡을 쓰게 되는 이야기. 라흐마니노프를 우리가 접할 때, 기사 같은 걸 보면 ‘누구누구 음악가가 라흐마니노프를 해냈다’, ‘성공했다’ 이런 표현이 많아요. 연출님도 말씀하셨지만, 얼마나 대단한 음악가기에 성공했다는 말이 나오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관객 분들이 보실 때 그 음악가가 앉아있는 게 아니라, 약하디 약해빠진 사람으로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의 곡이 정말 온전히 사람의 곡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달 박사를 많이 그리워했을 것 같아요. 달에 대한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라흐마니노프가 생을 마감할 때,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마감했다는데 달 박사도 같이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둘은 많이는 못 만났을 것 같아요. 하지만 라흐마니노프가 만든 음악을 들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고, 아픔을 기억하고, 함께 나눴던 시간을 공유해가면서, 음악 안에서 함께 살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전 둘이 해어졌을 때 만남이 없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음악으로 충분히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⑥ 안재영 배우님께.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연주를 하게 되는 장면에서 박유덕 배우님은 연미복을 다 갖춰 입으시는 반면 안재영 배우님은 그렇지 않아요. 이 부분이 캐릭터의 상징성이 있어서인가요? 녹색 조끼도 비슷한 맥락에서 궁금합니다.


약하디 약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가 생각하는 음악가의 모습, 물론 편견이긴 하지만, 클래식을 하고 단정한 모습을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음악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다른 것에 신경을 못 썼을 것 같아요. 참고했던 영화가 ‘샤인’ 이라는 영화에요. 그 주인공이 정말 음악밖에 모르는 주인공이에요. 영감을 많이 얻었어요. 온전하게 음악에만 집중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거기서 참고를 해서, 라흐마니노프가 좀 더 음악에만 집중하게끔 보이게 했어요.



⑦ 오세혁 연출님께. 빨간 코트를 쯔베레프 선생님께 바치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극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라흐마니노프가 떠난 이후에 쯔베레프 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 라흐마니노프가 장송곡을 만들어서 바치기도 했어요. 스승님의 죽음이 누나의 죽음처럼 죄책감으로 남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기억의 방에 그 모습이 남아있게 되는 거죠. 그런데 달 박사를 통해서 말을 하게 되고, 달 박사가 쯔베레프 선생님의 마음으로 말을 해주고, 그런 걸 통해서 쯔베레프 선생님을 보내드릴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의미로 빨간 코트를 접어서 쯔베레프 선생님을 하늘나라, 편한 곳으로 보내드리는 거예요. 빨간 코트 자체가 쯔베레프 선생님의 오브제입니다.



⑧ 김경수 배우님께. 프로이트는 어떤 존재인가요?


신문 기사에서도 라흐마니노프가 읽어주기는 하지만, 실제로도 샤르코 박사님의 수업을 함께 받았다고 해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니콜라이 달이 라흐마니노프를 만나러 왔을 때, 충분히 좋은 입지를 갖고 있는 박사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유명세를 타고 싶어 했을 것 같아요. 프로이트 이상으로 유명해지고 싶었는데,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함으로써 더욱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그게 프로이트가 니콜라이 달에게 준 영향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사실 초심–미국 유학을 갔을 때 들었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고 이 사람을 치료하고자 했던 마음-을 갖고 이곳에 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객이 전도된 거죠. 프로이트는 제가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에요. 그래서 제가 극 중간에 쯔베레프나 차이코프스키의 역을 대신 해줄 때, 많이 공감을 하게 됩니다. 쯔베레프가 차이코프스키에게 느끼는 열등감 같은 부분에서요.